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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여행

경복궁과 창경궁의 용도와 의미

by 독일곰팅이 2024. 5. 26.




경복궁과 창경궁은 서울에 위치한 조선 시대의 대표적인 궁궐이며, 

각각 특별한 용도와 의미를 지니고 있다.

청와대 입구 맞은편 경복궁 후문 입구


경복궁

경복궁의  뜻과 건립목적


경복궁은 1395년에 건립된

조선 왕조의 주요 궁궐로, "경복"은 "큰 복을 누린다"는 의미.

이 궁궐은 조선 왕조의 창업자인 태조 이성계가 수도 한양(현재의 서울)에 정치적 중심지로서 건립.

경복궁은 조선 왕조의 정치, 행정의 중심지로 사용되었으며,

왕과 왕비, 그리고 왕실 가족의 주거지로도 사용되었다.

 



경복궁의  역사적 배경

경복궁은 여러 차례 파괴되고 복원되었는데, 

특히 1592년 임진왜란 시기에 심각하게 파괴되었고, 

이후 약 270년간 폐허 상태로 남아 있었다.

19세기말에 고종 황제에 의해 광복문과 함께 복원되었고,

오늘날에는 과거의 영광을 대표하는 문화유산으로서 관광객에게 개방되어 있다.

창경궁

창경궁의  뜻

 

 "창경"이라는 한자어에서 유래했으며, 이는 "창(昌)"이 '번영하다' 또는 '흥하다'는 뜻이고,

"경(慶)"은 '경사' 또는 '기쁨'을 의미.

따라서 "창경궁"은 '번영과 기쁨의 궁궐'이라는 뜻을 지니며,

이 이름은 궁궐이 왕과 왕실 구성원들에게 기쁨과 안락을 제공하는 장소로서의 역할을 강조

창경궁의  건립 목적 

창경궁은 원래 창경원이라고 불렸으며, 

1483년 성종 때에 왕의 부모를 위한 여가와 휴식을 위해 설계된 별궁으로 시작.

 

창경궁은 원래 경복궁의 동쪽에 위치한 궁궐로, 1483년 세종대왕의 아들 성종 때 건립.

초기 명칭은 "창경원"으로,

 왕의 부모나 왕비의 부모를 위한 여가와 휴식의 공간으로 계획되었다.

이후 이곳은 왕실의 여성 구성원들이 사용하는 공간으로 자주 활용되었고,

다양한 왕의 거처로도 사용되면서 그 목적과 기능이 시대에 따라 변화.

 

창경궁은 본래 경복궁에 비해 규모가 작고, 개인적이며 여가 중심의 공간으로 설계되었다.
하지만 역사적으로 창경궁은 여러 왕의 주요 거처로도 사용되었으며, 

특히 왕실의 여성 구성원이 사용하는 공간으로 자주 활용

창경궁의  역사적 배경

조선 시대를 거치면서

 창경궁은 본래의 여가 중심의 공간에서 점차 정치적, 행정적 중요성을 갖는 궁궐로 변모.

특히 경복궁이 화재와 전쟁으로 파괴된 후에는 임시로 정궁의 기능을 수행.

이러한 역사적 배경은 창경궁이 단순히 왕실의 휴식 공간을 넘어

조선 왕조의 중요한 정치적 및 문화적 중심지로서의 역할을 했다
일제 강점기에는 일본인들에 의해 대중적인 동물원으로 전환되기도 했으며, 

이는 한국인에게 큰 모욕으로 여겨졌다

. 해방 후 창경궁은 원래의 궁궐 형태로 복원, 

오늘날 창경궁은 그 역사적 가치와 함께, 

한국 전통 건축과 조경의 아름다움을 보존하고 전시하는

중요한 문화유산으로서 인정받고 있다.

.

 



이렇게 경복궁과 창경궁은 각기 다른 역사적 배경과 용도를 가지면서 

조선 왕조의 정치적, 문화적 중심지로서 중요한 역할을 해 왔습니다. 두 궁궐 모두 한국의 역사와 전통을 이해하는 데 매우 중요한 장소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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