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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여행

독일여행코스추천 , 종교개혁가 마틴 루터의 도시 , 비텐베르크 Lutherstadt Wittenberg

by 독일곰팅이 2023. 4. 20.

루터와 멜란히톤 동상이 있는 비텐베르크 (Wittenberg) 시청사 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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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개혁가 마틴 루터의  도시, 비텐베르크 Lutherstadt Wittenberg는 독일 동부의  작센 안할트 ( Sachsen Anhalt ) 주에 속하는  중세 시대에 발전한 도시로,  프로테스탄트 개혁 운동의 중심지로서 유럽의 역사적인 중요성을 가지고 있다. 도시에는 루터의 집, 성 교회, 멜란히톤의 집등 프로테스탄트 개혁 운동과 관련된 유서 깊은 건물과 기념물이 많이 있다 Wittenberg는 독일의 프로테스탄트 문화의 중심지로서, 매년 많은 방문객들이 이곳을 찾아 방문한다. 도시에는 또한 Martin-Luther-Universität Halle-Wittenberg라는 대학교가 있으며, 고전적인 건축물과 공원 등도 매력적인 독일여행코스추천  명소중 하나이다.

 

주요 볼거리 

성 교회  (Schloss Kirche)

1110년에 축성된 옛 성당 건물로 성당건물의  잔재로는 1층 평면 부분과 서쪽 탑의 저층부만 남아 있다. 그 외 나머지 부분은 대부분 1181년에 완공된 것들이다.  서쪽의 성가대석 부분과 아치 부분은 13세기에 시공된 것이며 14세기에 남쪽 정문이 추가되었고 중앙돔이 재건되었다. 성 부속 성당이었던  비텐베르크 시내에 있는 이 교회의  현관문이 루터가 1517년 면제부 판매에 항의하는 95개 조 논제를 공표한 곳이다. 성당 건물은 7년 전쟁으로 많은 부분이 부서졌으나 여러 차례 수리하여 복원하였다. 지붕은 왕관 모양의 돔으로 되어 있고 네오고딕 양식의 제단 근처에는 루터와 그의 동지였던  멜란히톤이 안치되어 있다. 파괴된 목조 문대신 1858년에 동판에 루터의 반박문을 라틴어로 새겨진 "논제의 문( Thesentür )"이  설치되었다.  

 

루터의 집 (Luther Haus)

마틴 루터와 그의 가족이 살았던 집이지만  오늘날 종교 개혁 기념 박물관으로 보면 된다. 이곳은 아우구스티나 수도원 자리로 마틴 루터가 수도사로 있었던 곳이기도 하다. 수도원은 종교 개혁이 시작되던 해에 없어지고 수도원 일부는 학생 등을 위한 거주지로 변모하였으며 또 다른 곳은 루터의 가족들이 살게 되었다.
루터의 거실은 대학생들과의 유명한 담화를 위한 곳으로 바뀌었고 루터가 사용했던 방은 매우 잘 보존되어 있는데 루터의 책상, 설교 연단, 가르칠 때 입었던 옷, 그의 초고, 복사본등이 잘 보존되어 있다. 그래서 독일 종교 개혁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다. 목재 천장의 그랜드홀 르네상스 타일의 오븐과 루터가 400명의 학생들을 가르쳤던 조그만 강의 홀 등이 있다. 
또한 루카스 크라나흐 ( Lucas Cranach )가 그린 루터 초상화 및 회화 등 종교 개혁 예술품 등을 소장하고 있는 독일여행코스추천 박물관이다.

 

크라나흐 작업장  (Cranach Höfe)

 마틴 루터의 친구이자 마틴 루터의 초상화를 그린 화가로 유명한  루카스 크라나흐가 살았던 곳이다. Cranach Höfe는 Wittenberg의 시내에 위치하며, 현재 박물관인 이곳은 루터와 크라나흐의 생애와 작품, 르네상스 시대의 문화와 예술에 대한 전시를 보유하고 있다. 중세 시대의 건물을 보존한 것이 특징이며, 방문객들은 크라나흐가 살았던 방과 작업실, 화가가 그린 그림들을 볼 수 있다.

 

멜란히톤의 집 ( Melanchthon Haus)

16세기 독일의 학자 필립 멜란히톤이 살았던 집을 보존하여, 현재는 박물관으로 운영되고 있다. 루터주의 개혁의 중요 인물 중 한 사람인 멜랑히톤의 생애와 그의 업적, 그리고 루터주의 개혁 시대의 문화와 역사에 대한 내용을 다루는 박물관입니다. 멜란히톤의 생애와 그의 업적에 대한 전시물, 멜란히톤과 루터의 관계를 이해할 수 있는 자료들, 르네상스 시대의 문화와 예술 작품 등이 전시되어 있어 그의 생애와 업적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마틴 루터와  종교개혁 

마틴 루터는 누구인가?

마틴 루터는 원래 로마 가톨릭교의 사제였으나 로마 가톨릭 교회에 항거하여 가톨릭 교회의 논리를 논박하고 나선 종교개혁가이다. 그의 종교개혁 이후 개신교가 생겼고 결혼이 가능한  목사라는 직업이 생겼다고 이해하면 된다. 
루터 스스로는 그가 시작한 이 일을 종교 개혁으로 생각하지는 않았고 단지 하느님에게 이끌림을 받아 할 수 없이 한 일이라고 말하였다. 그는 복음주의자로서 복음을 전파하기를 원했고 자신의 설교자, 교수라고 불리기를 원했지만 그의 의도와는 달리  그가 행했던 일들은  엄청난 결과를 가져왔는데 그로 인해 개신교가 태동했을 뿐 아니라 성서 번역과 많은 저작 활동, 설교를 통해 사회와 역사가 크게 변화되었기 때문에 그를 종교 개혁가라고 부른다.

 

루터는 1483년 독일의 작센 안할트 주의 아이스레벤( Eisleben)에서 광산업에 종사하는 아버지 한스 루터와 어머니 마가레테 린더만 사이에서 태어난다. 그의 집안은 중산층으로 생계에는 지장이 없었으나 상당히 검사하여 그의 모친은 다른 동네 부인들과 같이 장작을 주었다고 전해진다. 루터는 엄격한  기독교인 아버지의 그늘에서 자랐고 그래서 진로 문제도 자신의 적성과 흥미가 아닌 아버지의 뜻대로 정해야 하였는데 루터의 아버지는 아들이 법률가가 되어 성공하기를 희망하여 에어푸어트 대학교에 보냈다고 한다. 

1505 년 루터가 대학시절  부모님 방문 후  에어푸어트로 돌아가던 중 슈토테른하임 (Stotternheim)  근처 허허벌판에서  천둥번개 속에서  벼락을 맞게 된다. 친구가 번개를 맞아 바로 옆 자리에서 즉사하는 사고를 겪은 루터는 그 후 수도사가 되겠다고 결심한다. 루터의 삶을 바꾸어 놓은 더 나아가 종교개혁의 출발점이 되었던 그 자리에는  1917년 비석이 세워졌다.
당시 수도원에 들어가려는 생각이 이미 무르익었던 터라 루터는 그 번개를 하나님의 음성으로 받아들였다. 자신의 기대에 어긋나는 아들의 진로 변경에 좌절을 느낀 부친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7월 17일 에어푸르트에 있는 아우구스티너  수도원에 입회하여 수사 신부가 되었다. 
루터는 죄인인 인간이 어떻게 거룩하신 하느님과 바른 관계를 맺을 수 있을까에 대해서 고뇌하였는데 수도원에서는 그를 비텐베르크에서 계속 공부할 것을  권유했다.

 

종교개혁의 계기 

비텐베르크 대학교의  요한 슈타오피츠 교수는 루터가 성서에 대해 진지하게 공부하면 평안을 찾을 것이라고 생각하여. 
그를  교수 사제로 임명하였고  교수의 결정은 루터가 신앙적인 고민을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 하지만 그가 비텐베르크에서 성서를  학문적으로 연구하던 중 로마 가톨릭 교회의 강제적인 면제부 판매는 루터의 신앙 양심을 근본적으로 흔들게 되었다. 그는 처음에는 자신의 깨우침이 얼마나 급진적인지 알지 못한 채 계속 성서 연구에 전념하고 있었는데 면죄부 논쟁을 계기로 그것이 드러나게 되었다.

 

면제부는 로마 가톨릭 교회 일곱 성사들 중 하나인 고해성사와 연관된 것이다.  교인이 자신의  죄 고백을 하고 죄사면을 받은 뒤  그에 상응하는 시편 낭송, 특별 기도 등의 행위를 해야 하는데 면죄부는 이러한 절차를 면해주는 증서였다. 그런데 점차 면제부가 로마 가톨릭 교회의 주요 수입원이 되면서 교회는 면제부 영업에 열을 올려 " 금화가 금괴에 떨어지며 소리를 내는 순간 지옥에서 벗어나 하늘나라로 올라갈 것"이라고 설교하며 사람들을 기만하였던 것이다. 
이러한 타락에는 교인들도 원인을 제공하였는데 실제로 중세 교회 신자들은 하나님께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는 진지한 신앙생활보다는 면제부를 구입함으로써 죄의식을 면하려는 손쉬운 신앙생활을 좋아하였으며 구원을 돈으로 살 수 있다는 교회 주장이 과연 성서의 가르침에 부합하는가를 생각하지는 않았다.

 

교인들의 영혼을 염려하는 목회적 책임감에  루터는 여러 번  면제부 판매를 비난하였다. 그러나 면죄부 판매 제거 요청들이 결국 실패하자 루터는 공개 논쟁을 요청하기로 하고 1517년 10월 31일 전야의 95개 논제를 비텐베르크 성 교회 문에 내걸었다. 토론을 위해 내걸었던 95개 논제는  대량으로 인쇄되어  순식간에 전 독일로 퍼져나갔을 뿐만 아니라 전 유럽에 미치게 되었다. 

 

그러나 가장 오래된 기록에는 루터가  교회 문 앞에 논제를 내걸었다는 말이 없다. 더욱이 반박문은 루터가 손으로 쓴 뒤에 인쇄되어 사람들에게 읽혔으며 책으로 펴낸 뒤에도 교회의 문 또는 그 근처에 게시되어다는 말은 나타나 있지를 않다. 벽에 게시한 일을 처음 거론한 사람은 멜란히톤이며 , 그는 루터가 죽은 직후 자신의 저서에서 루터에 대해 언급하면서 반박문을 벽에 게시한 일을 기록한 최초의 사람이다.  

루터의 종교 개혁 사상은 철저히 하느님 중심이었다.  루터는 성서는 그 문자가 자명하고 단순하기 때문에 어느 누구라도 이해할 수 있는 책으로서  다른 어떤 해석자도 중요하지 않다고 주장했다. 그는  신학과  신앙 교류의 최우선 권위는 성서라고 주장함으로써 교황의 권위는 절대적이지 않음을 밝혔다.

추가 정보 

루터의 생가와 임종의 집이 있는 아이스레벤 ( Eisleben)

아이스레벤( Eisleben)의  루터 생가는 마틴 루터가 1483년 11월 10일 태어난 집이다. 
목조 구조의 집인데 건물 정면은 1689년 심각하게 훼손되었다가 보수 후  1693년 독일에서 기념 박물관으로 대중에게 개방이 되었다.  주요 층은 종교개혁 역사 기념홀로 꾸며져 있고, 지하에는  중세 부엌이 있으며 루터가 유년 시절에 사용했던 책과 목판화로 된 성경책들이 있다. 1484년 그의 가족은 아이스레벤에서 만스펠트(Mansfeld)로 이사를 했다. 

루터가 말년에 아이스레벤을 방문했다가 1546년 2월 18일에  사망한 것으로 알려진 Andreasplatz에 있는 루터 임종의 집 (Sterbehaus)이 현재 박물관으로 방문이 가능하다. 하지만 최근 조사에 따르면  현재 호텔인  " Graf von Mansfeld"의 집이 그가 실제로 사망한 장소라고 한다. 

1996년 아이스레벤은 비텐베르크에 있는 다른 루터 관련 지역과 더불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마틴 루터의 아내 카타리나 폰 보라 (Katharina von Bora)

 카타리나 폰 보라 혹은 보라슈미트베르크 (Katharina von Bora , Katharina von Bora-Schmiedberg)라고 불린다.
1499년생으로   마틴 루터보다 16살 연하였던  카타리나 폰 보라는  중세 독일의 귀족 가문에서 태어났으나, 수녀 생활을 하였다. 이후 화가인 루카스 크라나흐의 집에 살면서 일을 하다가, 마틴 루터의 주변 인물 중 한 사람인 멜란히톤의 주선으로  1525년 마틴 루터와 결혼하였다.
가난한 수도원 살림을 맡아 농사를 지으며 6남매와 양자 4명, 수도원에서 기숙하던 루터의 제자 10명 가지 거두었던 강한 여성으로 알려져 있다. 카타리나 폰 보라는 마틴 루터와 함께 수많은 인쇄물을 번역하고, 독일 교회의 발전과 루터주의 개혁 운동의 성공에 큰 역할을 하였다. 또한, 카타리나 폰 보라는 마틴 루터가 죽은 후에도 그의 업적을 계승하여, 마틴 루터가 설립한 아카데미를 지원하고, 마틴 루터의 저작들을 보존하는 데 큰 기여를 하였다.

 

그럼  "마틴 루터 킹"은 누구인가? 

마틴 루터 킹(Martin Luther King Jr.)은 미국의 목사, 인권 운동가, 비폭력주의자이며, 1929년 1월 15일에 조지아주 애틀랜타에서 태어났고, 1968년 4월 4일 테네시주 멤피스에서 암살당했다.
마틴 루터 킹은 1955년  미국 인종차별의 폐해를 공개적으로 알리고 인권 운동을 주도했다. 그는 비폭력과 시민 불복종을 주장하며, 1963년 8월 직업과 자유를 위한 워싱턴  행진 시위를 주도하며, " I have a Dream"이라는  역사적인 연설을 했다.
그는 또한 1965년 선거권법에 관한 행진 시위를 주도하였으며, 이는 비폭력적 시민 불복종으로 미국의 선거권 확장을 이루는 계기가 되었다. 마틴 루터 킹의 업적은 미국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높게 평가되고 있다.

Tip

마틴 루터의 종교개혁은 당시 시대 분위기를 생각한다면  왕까지도  제압했던 최고 권력의 로마 가톨릭에 대한 항거로  사회개혁이라고 보아도 좋을 것이다. 특히나  성직자의 입장에서  로마 가톨릭 교회의 부패를 비난하며  본인의 뜻을 끝까지 관철한 종교개혁가 마틴 루터의  도시, 비텐베르크 (Lutherstadt Wittenberg)는 기독교인이 아니더라도  방문해 볼 만한 가치가 있는 독일여행코스추천  명소이다.

성지순례를 하거나 종교개혁 테마기행을 계획한다면   마틴루터가 태어나고 사망한 아이스레벤 (Eisleben) , 대학을 다니고 첫 수도사생활을 시작한  에어프루트(Erfurt) , 종교재판을 받았던 보름스(Worms), 은둔생활하며 성서를 번역했던 아이제흐(Einsenach) 등을 함께 둘러보면 좋다.

 

이 글은 필자의 학창 시절 우상이었던  방 정은 님을 위해 쓴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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