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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여행

프랑크푸르트 여행 , "화폐 전쟁"의 로스챠일드 가문 공원, 로트쉴트 파크(Rotschild Park)가 있는 프랑크 프르트 도심 부촌" Westend"

by 독일곰팅이 2023. 7. 14.

프랑크프르트 금융가 베스트엔트( Westend )지역에 위치한 Rotschild 공원내 신고딕 양식의 탑

로트쉴트 공원 (Rothschildpark)은 1941년부터 프랑크푸르트의 Westend 지역에 있는 공원으로 19세기에 이곳에 부동산을 구입하고 궁전과 공원을 지은 프랑크푸르트 은행가 로스챠일드(Rothschild )의 이름을 따서 명명되었다.

 

베스트셀러 " 화폐전쟁 "에 등장하는   로스챠일드 가문

 

" 화페전쟁 "은 2007년 재미 중국인 금융전문가 쑹훙빙(宋鴻兵)이  출판한 도서로 당시 베스트셀러에 올랐으며 시리즈로 5권까지 나왔다. 이 책에서 주장하는 바는 "세계 경제는 소수의 금융재벌이 지배하고 있다."라고 할 수 있는데 금융재벌들이 중앙은행을 장악해서 국가의 경제를 좌지우지하고 신흥국과 서민들의 부를 약탈한다는 것이다.
대표적인 예로 로스차일드 가문은 워털루 전투에서 헛소문을 퍼트려 부를 쌓았고 수많은 나라의 재정을 장악해서 지금은 무려 50조 달러에 달하는 재산을 가지고 있으면서 일반인들은 그 존재조차 모르고 있다. 그 외 JP모건, 록펠러, 제임스 힐, 와버그 형제 등 재벌들이 미국 중앙은행을 장악하고 호황과 불황을 반복하여 재산을 불리고 있다.

로스챠일드 가(Rothschild family)

로스챠일드 ( Rotschild)가문 문장이 새겨진 암셀 마이어 로스챠일드 기념비

'로스차일드'( Rotschild)라는  단어는 원래  독일어로는 로트쉴트  " Rot 빨강" ," Schild 방패" , 독일어로 '붉은 방패'라는 뜻이다.프랑스어로는 로쉴드로 발음된다. 이와 같은 이름은 당시에 가문이 대대로 살던 저택의 모습에서 따온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이 붉은 방패는 아직도 로스차일드가의 문장 한가운데에 박혀 있다. 본래 로스차일드 가문은 독일의 대금업자 가문이었으나 1744년 독일 프랑크푸르트의 유대인 지역에서  태어난  암셀 마이어 로스차일드가 자신의 금융 제국을 만들고, 5명의 아들들을 유럽 각지로 파견하여 사업 범위를 확장해 나가기 시작한다. 5명의 아들들에게 사업을 분배해서 맡겨 최초의 국제적 금융 은행을 설립한 후 막대한 부를 축적하였다. 로스차일드가는 신성 로마 제국, 오스트리아와 영국 정부로부터 귀족 작위를 받았다. 로스차일드 가문의 문장에 그려져 있는 '5개의 화살을 쥐고 있는 주먹'은 바로 이 5명의 아들들을 상징적으로 그린 것이다.  

공원내 게오르크 콜베( Georg Kolbe) 조각상

19세기에 로스차일드 가문은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가문으로 올라섰으며, 현재까지도 그 명예를 지켜나가고 있다. 가문의 재산은 시간이 지나며 기하급수적으로 불어났고, 로스차일드 가가 관여하는 분야는 수많은 사업들을 망라하며 걸쳐져 있는데, 국제 금융, 주식, 광업, 에너지 사업, 비영리사업까지 장악하며 그 범위를 꾸준히 확장시키고 있다. 이와 같은 엄청난 부 때문에, 로스차일드 가는 종종 국제 정치와 경제를 장악한 음모론의 주인공이 되기도 한다. 로스차일드 가문은 유럽의 왕과 귀족들의 신용과 예금을 관리하였으며, 그들의 은행은 왕실과 귀족들의 명성과 권위를 바탕으로 굳건하게 그 세를 불려 나갔다. 그들의 재산은 주식, 채권, 부채와 같은 형식으로 전 세계를 순환하였다.

암셀 마이어  로스차일드는 오직 가문에 속한 사람들만 은행에 대해 깊숙이 관여할 수 있도록 하여, 가문과 은행의 재산을 철저하게 숨겼다. 나중에는 다른 유대인 가문들도 이와 같은 방식을 따라하기 시작하며, 부를 쌓기 시작했다. 19세기 중반에 이르러, 유대인 가문들은 세계 경제에 필수적인 요소가 되었다. 로스차일드 가문은 왕실과 다른 대부호 가문들과 결혼하며 가문의 부를 축적했다.

추가 정보 

Rotschild Park 입구의 공원의 역사를 알려주는 안내판

 현재의 축소된  공원은 Reuterweg 거리와 Oberlindau 거리 사이의 오페라 하우스 (Alte Oper) 북서쪽에 있다.1938년 9월, 국가 사회주의 도시 행정부는  유대인 금융가인  당시 소유주 Maximilian von Goldschmidt-Rothschild에게 공원 지역과 궁전을 그 가치보다 훨씬 낮은 가격에 도시에 매각하도록 강요했고 그는 1940년 2월 사망할 때까지 궁전의 작은 아파트에서만 살도록 허용되었다. 1941년에 공원이 대중에게 공개되었고 1943년에 Wöhlerpark (화학자 Friedrich Wöhler의 이름을 따서 )로 이름이 변경되었다가  Rothschildpark로 다시 명명되었다. 2차 세계 대전 동안 공원은 심하게 손상되었다가 현재 이곳은 1950년부터 프랑크푸르트시에 속해 있으며 누구나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는 시민 공원으로 도심에 위치하고 있어 프랑크푸르트 여행 중 들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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