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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여행

독일여행코스추천 ,영국왕좌에 오른 독일 하노버 (Hannover)왕가의 도시 , 만인의 연인 롯데의 흔적을 찾아서..

by 독일곰팅이 2023. 6.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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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노버(Hannover)는 독일의 니더 작센주의 주도로 표준 독일어를 사용하는 곳 알려져 있으며 산업전시회로도 유명하다. 하노버라는 이름은 높은 강둑을 뜻하는" Honovere"에서 온 것인데 원래  작은 어촌에서 시작하여 13세기 무렵 규모가 큰 도시로 성장하였다. 도시의 성장은  라인 강을 이용한 무역의 발달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데, 한자 동맹의 활동과 함께 하노버는 독일 북서부의 하르츠 산맥에서부터 한자 동맹의 중심 도시였던 브레멘에 이르기까지 독일 전역의 무역로를 연계하는 거점으로서 성장하였다. 독일의 산업화가 진행됨에 따라 하노버는 하르츠 산맥 북부의 철과 은의 운송 거점이 되었다. 1636년  브라운슈바이크(Braunschweig)의  선제후 게오르그가  하노버에  궁정이 두었기 때문에  하노버 선제후국으로  널리 알려졌고  브라운슈바이크 공작 게오르그가 하노버 왕가의 시조이다

마쉬 호수(Maschteich)에서 보이는 신시청사

볼거리 

헤렌호이져  정원(Herrenhäuser Garten)

헤렌호이져 정원(Herrenhaeuser Garten)

17세기와 18세기에 건립된 바로크 정원으로, 하노버 왕가의 궁전인 헤렌호이져 궁전( Schloss Herrenhäuser )과 함께 건설되었다. 궁전과 정원은 하노버의 공작인 에른스트 아우구스트(Ernst Augustus)와  하이델베르크 선제후 프리드리히 5세와 영국 공주 엘리자베스 스튜어트 사이의 딸인 소피(Sophie von der Pfalz)의 주도로 만들어졌으며, 왕실의 여름 별장으로 사용되었다. 헤렌호이져 궁전은  정원의 중심에 위치하며, 대표적인 바로크 정원 요소들을 포함한  물길 모양 잔디밭이 특징인 독일여행코스추천 명소이다.
이 정원은 다양한 문화적 행사와 공연의 장소로 활용되는데 여름 동안에는 야간 정원 행사, 공연, 연극 등이 열리며, 이곳에서 아름다운 환경에서 문화적인 행사를 즐길 수 있다.

신시청사 ( Neues Rathaus)

외관상 왕궁처럼 보이지만  하노버 시의  행정업무를 보는 시청으로 1901년에서 1913년 사이에 건축된  빌헬름 양식의 성과 같은 웅장한 건물이다. 도심의 남쪽 가장자리에 있는 10헥타르 규모의 마쉬공원(Maschpark)안에 있어 시청 건물 뒤쪽으로 가면 넓은 공원이 펼쳐져있다. 건물의 남쪽은 마쉬 연못(Maschteich)을 향하고 있다.

그 외 시내 볼거리 

아예기디엔 교회 (Aegidienkirche)

고딕 양식의  이 교회는  14세기에 시작하여 15세기에 완공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중  파괴되었으며, 파괴 이후 재건되지 않아 전쟁의 기억의 장소로서 보존되고 있다. 도심의 주거지 안에  파괴된 교회 건물 흔적만 남아 있으며, 그 자리에는 파괴를 상징하는 기념비가 세워져 있다. 지금은 주로 문화적인 행사와 전시회를 위해 사용되고 있다.

구시청사 (Altes Rathaus)

구시가지에 위치한 중세 시대의 건물로, 15세기말부터 16세기 초에 건설된 고딕 양식의 건물로 시청사로 사용되던 건물이다. 건물은 벽돌과 화강암으로 건축되었으며,  도드라지는 색깔과  함께 장식적인 요소와 타워가 특징이다. 현재는 전시회, 음악회 등 다양한 이벤트 행사가 개최되는 곳이다.

만인의 연인 롯데의 흔적 

하노버시내의 롯데( Lotte)의 묘지

하노버의 귀족  게오르그 1세 ( 조지 1세, George I, ( Johann Wolfgang von Goethe ) 사이의 친밀한 우정은 베츨라( Wetzlar)로 거슬러 올라간다.  케스트너와 괴테는 Wetzlar의 제국 의회 법정 (Reichskammergericht)에서 함께 일하면서 서로를 알게 되었다. 요한  케스트너(Johann Christian Kestner)는 베츨라(1767~1773)에 있는 제국 법원에서 일하면서 지방관리의 딸이었던  샬롯테 부프( Charlotte Buff)를 만났고 , 결혼 후(1773) 함께 하노버로 갔다. 괴테가 롯데를 만나기 전 그녀는 이미 하노버의 변호사  케스트너( Johann Christian Kestne)와 약혼한 사이였다. 괴테의 대표작  "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이  롯데를 주인공으로 한 소설이다.
 

롯데의 아들  "아우구스트 케스트너 박물관" (August Kestner Museum)

 신 시청사 바로 옆에 위치한 고대 및 이집트 문화, 디자인 컬렉션 전시 박물관이다. 아우구스트 케스트너는 독일의 변호사, 외교관, 고고학자 및 미술품 수집가로  괴테의 소설 속 모델로 유명한 롯데( Charlotte Buff)의 아들이다. 하노버 케스트너가로 시집간  롯데가 낳은  11명의 자녀 중 4번째 자녀로 그의 수집품을 물려받은 조카가 그의 뜻을 받들어 만들어진 박물관이다. 
 

근교 숨은 명소  

마리엔 부르크 성 (Schloss Marienburg)

하노버(Hannover) 근처의 파텐센(Pattensen)에 위치한신 고딕 양식의 성으로,  그림 같은 전망과 아름다운 숲으로 유명한 현지인에게는 많이 알려진 명소이다. Schloss Marienburg는 하노버에서 차량으로 약 30분 거리에 위치하고 있다. 하노버 왕가의 게오르그 5세 왕이 그의 아내  마리 (Marie)를 위해 지은성으로, 그는 자신의 사랑의 증표가 언젠가 독일에서 가장 인상적인 신 고딕 양식의 기념물 중 하나가 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1858년에서 1867년 사이에 난쟁이들이 거주했다는 전설이 내려오는 산 위에 이 신고딕 양식의 마리엔베르그  지어졌다. 여왕은 성을 무척이나 맘에 들어했고 "나의 작은 엘도라도"라고 불렀다고 한다. 그러나 운명은 야속하게도 왕도 그의 사랑하는 아내 마리도 그곳에서 제대로 살지 못했다. 궁전이 완공되기도 전에 프로이센은 1866년 조지 5세와 그의 아들을 오스트리아로 추방했고, 조금 후에 여왕은 두 딸과 함께 궁전에 잠시 거주했으나 1867년 초, 남편에 대한 갈망과 정치적 압력 사이에서 고민하던 마리 여왕은 왕을 따라 오스트리아로 망명했고 그녀의 "엘도라도"를 다시는 볼 수 없었다. 19세기에 만들어진 만큼  근대적인 편의 시설과 결합되어 있는 성의 내부는 고급스러운 장식의 앤틱가구로 장식되어 있으며, 방문객은 역사적인 방과 전시실을 탐험하며 19세기 성의 아름다움을 감상할 수 있다. 성 주변에는 넓은 정원과 산책로가 있어 휴식과 자연의 아름다움을 즐길 수 있다. 또한, 성 안에는 레스토랑, 카페 시설도 있어 방문객들은 식사나 차 한 잔을 즐기며 휴식을 취할 수 있는 독일여행코스추천 명소중 하나이다.
 
 

추가 정보 

독일 하이델베르크로 시집온 영국인 외할머니 Elisabeth Stuart덕에 영국왕이 된  하노버 왕가

하이델베르크 성 정원의 엘리자베스 문

하이델베르크 (Heidelberg) 성 정원에 일명"사랑의 문"이라고도 불리는 부서진 돌문이 남아있다.하이델베르크 선제후 프리드리히 5세가 정략결혼한 영국의  엘리자베스 스튜어트(Elisabeth Stuart)의 생일을 맞아 전날 하룻밤사이에 지어진 문이라고 전해진다.  이들은 하이델베르크성에 살았던 가장 금슬이 좋았던 부부로  전해지는데 둘 사이에서 낳은 딸 소피아 스튜어트가 나중에 1658년  하노버 왕국의 선제후 에른스트 아우구스트와 결혼하고  그 사이에서 나은 장남 게오르그(Georg는 영어로 "조지" ) 1세가 후에 영국의 앤 여왕 사망 후  영국왕좌에 오른 조지 1세이다. 영국 왕위 계승법에 따라 (오로지 프로테스탄트에게만 왕위가 계승)  앤 여왕이 자손이 없이 사망하자 왕권이 스튜어트 왕가에서  프로테스탄트인 독일계 하노버 왕가로 넘어간 것이다. 
 

영국 하노버 왕가의 시조, 게오르그 1세 ( 조지 1세, Georg I, 1660년  ~ 1727년 )
 

재위기간은 1714년부터 1727년 까지다. 신성 로마 제국의 제후국 중 하나인 하노버 선제후국의 선제후이자 브라운슈바이크 공작 에른스트 아우구스트와 팔츠의 소피 사이에서 태어났으며, 영국 왕 제임스 1세의 외외증손자(딸의 외손자)가 된다. 1701년 제정된 영국 왕위계승법으로 제임스 1세의 손녀인 어머니에 이어 영국 왕위 계승 3순위가 됐다. 그보다 앤 여왕에 더 가까운 친척들도 50인 이상 있었으나 영국 왕위계승법은 가톨릭 신자의 왕위 계승을 원천 금지하고 있어, 조지 1세와 그 어머니가 앤 여왕의 가장 가까운 신교도 혈육으로서 왕위 계승자에 이름을 올렸다.
1714년에 어머니가 향년 84세로 죽자 차기 계승자가 됐고, 앤 여왕이 같은 해 8월 1일 후사 없이 향년 49세에  서거하자
54세의 나이에 영국 왕에 올랐다. 그는 영어를 할 줄 몰랐고 정치에 관심이 없었다. 그는 점차 정치문제를 주재하지 않게 됐고,  전권을  다른 이에게 주면서, '군주는 군림하지만, 통치하지는 않는다'는 입헌군주제의 원칙을 확립되는 계기가 됐다. 이후 의원내각제와 입헌군주제가 영국에서 뿌리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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